빠름보다 중요한 것

캐나다 국적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매번 느끼는 한국인들만의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무엇이든 굉장히 “빠르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인터넷이 빠르게 터지는 나라, 첨단 유행이 가장 빠르게 퍼지는 나라, 서비스센터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모두가 기민하고 빠른 나라로 한국은 유명합니다.

오죽하면 국가번호조차 +82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빠름은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미리 준비하고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이런 기민함과 빠름을 흡수한 문화가 항상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여러 매장이나 서비스센터 등에서 접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고객의 요구를 빠르게 처리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꽂혀 있는 듯합니다. 조금 느려도 좋으니 나라는 손님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길, 조금 더 진중하고 적극적인 소통으로 응대해 주길 바라지만, 빠르고 무표정하게 응대하는 그들을 볼 때면 왠지 마음이 씁쓸해지곤 합니다. 볼일을 다 봤으면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느라 손님으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은 전혀 느낄 새가 없습니다.

캐나다, 느림의 문화 속에서 중시되는 소통과 신뢰

25년 넘게 살아온 캐나다의 문화는 이와는 사뭇 다릅니다. 캐나다에 조금이라도 있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캐나다는 서비스센터에 제품 A/S를 맡기거나 카드 발급 등을 신청하면 한 달이 족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이 점을 굉장히 답답하게 여기지만, 놀랍게도 막상 캐나다인들은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느린 만큼 또 다른 큰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상호 간에 깊게 깔린 소통과 신뢰의 감정입니다. 캐나다의 서비스 응대 속도는 느리지만, 그들은 고객 한 명 한 명과 깊게 소통하며 고객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렇기에 다소 느리더라도 고객들은 직원이나 업체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 덕분인지 북미 사회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캐나다 브랜드인 팀홀튼(Tim Hortons)은 캐나다에서만큼은 스타벅스 못지않게 오랜 사랑을 받고 있고, 한국에서도 방한복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캐나다구스(Canada Goose)나 루츠캐나다(Roots Canada), 룰루레몬(Lululemon) 역시 캐나다 현지인들과 오랜 역사를 함께해 왔습니다.

결국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고객들에게는 잘 아는 브랜드, 오랫동안 믿고 사용해 온 브랜드가 가장 좋은 브랜드인 셈입니다. 단순히 가격이나 가성비에만 좌우되기보다는 자신이 신뢰하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한번 형성된 브랜드 충성도 역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빠른” 한국과 “느린” 캐나다

하지만 한국은 무엇이든 빠르게 일궈온 특성이 있어서인지, 과정에서의 깨달음이나 성장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조금 더 빠르게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기보다는 빠르게 주목받았다가 금세 사라지는 브랜드들도 적지 않고,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제품력이나 준비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 역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한국 기업들의 좋은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자주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부분들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컨설턴트로서 어떻게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더 잘 살려 한국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북미 및 서구권,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캐나다 및 서구권, 이윤보다 소통 중시, 장기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 나가야

사실 캐나다나 미국, 유럽을 포함한 서구권에서 단시간에 성공하기는 무척 어렵고 드문 일입니다. 물론 운이 좋게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간혹 있겠지만, 수많은 기업과 상담을 하면서 당장 서두르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신뢰를 먼저 쌓아나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것이 제가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유럽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직접 경험하고 배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유럽 업체들은 큰 문제가 없다면 대부분 오랜 기간 거래해 온 거래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갑니다. 다른 업체가 제품을 조금 더 저렴하게 공급한다고 해도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구권에서는 단기적인 이윤만큼이나 믿을 수 있고 소통이 잘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검증하는 오랜 시간을 통해 쌓이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저 역시 한국에서 새로운 파트너나 기업과 일을 시작하게 되면 길게 생각하고, 먼저 비즈니스 관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접근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제게 용건이나 도움을 먼저 요청하거나 당장의 결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소통이 끊긴 경험도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 역시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빠른 결과를 기대하는 상황에서는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문화든 무조건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한국은 제 아이덴티티의 일부를 차지하는 나라이기에 그런 것일까요. 가끔은 객관적으로 체감하게 되는 몇몇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 남다른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단기적인 이윤과 유행에 너무 초점이 맞춰진 비즈니스 문화를 볼 때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보완된다면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나무가 클수록 그 뿌리가 깊듯이 모든 위대한 성과는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매년 수많은 전시회를 참관하고 한국 기업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다만 북미 및 서구권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을 만나면, ‘큰 바이어 하나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전시회부터 참가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사실 현지 바이어들은 단순히 쇼핑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시회는 그동안 준비한 과정과 경험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장소이기에, 제대로 준비했다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잠깐의 만남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매번 북미 전시회를 갈 때마다 한국관과 현지 로컬 부스의 차이도 느끼게 됩니다. 한국관은 말과 설명으로 단시간에 승부하려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현지 부스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레퍼런스를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인연을 만들어갑니다.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인연을 맺고, 그렇게 시작된 관계를 잘 유지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 준비된 기업만이 적절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캐나다와 미국, 북미와 유럽 서구권 시장은 느리고 긴 과정 안에서 신뢰를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시장에 급하게 접근하기보다는 현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능하다면 현지 인프라와 관계를 잘 활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입니다.

여전히 한국의 빠름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많은 것을 이뤄낸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 역시 이런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속도나 양뿐 아니라 질적인 비즈니스 문화도 함께 만들어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비즈니스든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길지만 결과는 언제나 달콤합니다.

첨예한 가격 경쟁보다는 서로를 아우르는 탄탄한 비즈니스 관계, 빠르지만 무성의한 서비스가 아닌 소통을 기반으로 먼저 신뢰를 쌓고 인상적인 서비스를 추구해 보면 어떨까요?

모름지기 지금보다 곱절은 더 멋진 한국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Allen Chung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