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약국의 선반은 누가 지키는가
지난 2026년 9월, 프랑스 파리의 몽쥬약국에서 첫 K-뷰티 포마시옹(Formation)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한국 브랜드의 제품을 준비하고, 약사와 매장 직원들에게 직접 제품을 소개하며 특징과 사용감을 함께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제품을 매대에 올리는 것과 현지 직원이 그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비자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한국 브랜드들과 상담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프랑스에서는 어느 약국에 입점할 수 있나요?”라는 것입니다. 특히 파리의 유명 약국에만 들어가면 프랑스 시장 진출에 성공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유명 약국에 입점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경험한 유통의 현실은 입점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차이는 실제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프랑스 약국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약사와 매장 직원의 설명이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채널입니다. 제가 경험한 몽쥬약국에서도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서 본 특정 한국 제품을 찾아오는 젊은 고객들이 있는 반면, 직원의 추천을 통해 처음 K-뷰티를 접하는 고객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매대에 놓인 제품이라도 소비자가 선택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K-뷰티의 경쟁력은 분명합니다. 접근 가능한 가격대에서 다양한 제형과 사용감, 새로운 스킨케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자가 선택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제가 접한 약국 소비자들 중에는 온라인에서 제품과 성분을 미리 알아보고, 매장에서는 자신의 피부에 적합한지 확인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더마코스메틱에서는 피부 고민에 맞는 설명과 제품별 근거가 중요하고, 클린뷰티에서는 비건이나 천연이라는 이미지뿐 아니라 실제 성분과 표시 정보도 중요합니다. 프랑스에서 널리 알려진 Yuka(유카)와 같은 앱을 통해 제품의 성분 정보와 평가를 직접 확인하는 소비자들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강조하는 “기능성”이라는 표현 역시 현지에서는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어떤 피부 고민에 적합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효능을 설명할 수 있는지 현지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지 약사와 매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9월 몽쥬약국에서 진행한 포마시옹 역시 단순히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어 자료와 테스터, 직원용 샘플을 준비하고, 직접 사용감을 확인하면서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추천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동시에 매장 밖에서는 현지 인플루언서 시딩과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관심을 만들었다면, 약국에서는 그 관심을 실제 구매와 재구매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에 앞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조건도 있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CPNP 신고를 마치면 프랑스 판매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CPNP는 정부가 제품의 품질이나 효능을 인증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EU 책임자 지정, 안전성 평가와 제품정보파일(PIF), 프랑스어 필수 표시사항과 광고 표현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포장재 역시 적용 대상에 따라 Triman·Info-tri 표시뿐 아니라 EPR 의무와 IDU 등록 등 실제 이행 체계까지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규정을 충족했다고 해서 판매가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저희가 협업하는 약국 중에는 제품을 SKU당 단 3개 정도만 진열하고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는 곳도 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너무 적은 수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약국 입장에서는 한정된 진열 공간에서 브랜드사가 아무리 좋다고 자신하는 제품이라도 실제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많은 품목을 입점시키는 것보다 소수의 핵심 제품으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판매 실적에 따라 2차·3차 발주로 이어지며 추가 매장으로 확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브랜드와 현지 유통사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유통사는 재고를 확보하고 거래처를 개발하며 판매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브랜드 역시 현지 마케팅과 직원 교육, 테스터와 샘플 지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여기에 안정적인 공급과 일관된 가격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온라인 가격이 크게 흔들리거나 재고가 끊기면 약국에서 지속적으로 추천하고 판매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희는 파리 몽쥬약국에서의 K-뷰티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파트너들과 함께 프랑스 내 약국 유통망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리더상떼 등을 포함한 약 1,000개 약국 네트워크로의 확대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HEALTHY GROUP, APRIUM, 몽쥬약국 운영진들과도 K-뷰티의 단계적인 도입과 확장 방향을 구체적으로 협의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도 처음부터 많은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최근 협의에서는 18개 제품으로 구성된 K-뷰티 마스크 바(Mask Bar)와 매장 규모에 맞춘 소형 디스플레이, 초기 제품 구성을 통한 소비자 반응 검증 등을 제안했습니다. 제품 선정부터 진열 방식, 직원 교육과 현지 영업 지원까지 함께 설계해 실제 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파리의 유명 약국과 지역 주민 중심의 약국은 고객층과 구매 방식이 다릅니다. 몽쥬약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다양한 유통채널에 널리 판매되는 인기 브랜드만 늘리기보다, 약국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추천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을 선별하고 가격과 유통 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직 K-뷰티가 프랑스 약국 전체에서 확고한 독립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인기 제품의 판매와 K-뷰티 전체의 정착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결국 첫 구매가 재구매로 이어지고, 한 매장에서 검증한 판매 방식을 다른 약국에서도 재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시장 확장이 가능해집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브랜드 선정부터 현지화, 직원 교육과 마케팅, 공급 운영까지 연결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명 약국에 한 번 입점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그 매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더 많은 약국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The purpose of a business is to create and keep a customer.”
“비즈니스의 목적은 고객을 만들고, 그 고객을 지키는 것이다.”
지난 9월 몽쥬약국에서 진행한 포마시옹을 떠올리면 이 말의 의미가 더욱 와닿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제품의 사용감을 확인하고,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추천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간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것과 소비자가 그 제품을 계속 선택할 이유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몽쥬약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프랑스 약국과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면서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매장 수가 아닙니다. 한 곳에서 검증한 판매 방식을 다른 약국에서도 재현하고, 첫 구매가 재구매로, 첫 발주가 재주문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품력뿐 아니라 현지 직원의 이해와 추천, 소비자의 경험, 그리고 브랜드와 유통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정적인 운영 구조가 필요합니다.
입점은 선반을 얻는 일입니다. 하지만 진짜 유통은 소비자가 다시 찾고, 약국이 다시 주문할 이유를 만드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