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력은 입장권이고, 신뢰 구조는 체류 자격이다

캐나다에 살면서 이번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을 꽤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한국이 제안한 잠수함의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솔직히 마음으로는 한국이 따내기를 바랐습니다. 한화오션의 잠수함이 기술력이나 실행력 측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고, 최근 K-방산이 보여준 속도와 성과 역시 충분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캐나다의 선택은 독일 TKMS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캐나다는 최대 12척의 잠수함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독일 TKMS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종 계약은 아직 협상 단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무척 컸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 제품을 북미와 유럽 시장에 연결해 온 사람으로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결과가 아주 의외였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캐나다의 선택에는 성능과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서구권 시장 특유의 오래된 판단 방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과를 두고 많은 분석이 나옵니다. 나토 상호운용성, 독일과 노르웨이의 공동 운용 체계, 북극 작전 적합성, 캐나다의 나토 방위비 확대 압박, 그리고 유럽과의 안보 협력 강화. 물론 모두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제 보도에서도 TKMS는 나토 운용 체계와의 적합성, 독일 및 노르웨이와의 장기 협력 가능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결과를 보며 방산보다 먼저 유통을 떠올렸습니다. 무기와 화장품, 식품, 생활용품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하지만 서구권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더 좋은 제품이 있다고 해서 바로 바뀌지 않습니다. 더 빠른 납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선택되지도 않습니다. 이미 검증된 관계, 오랫동안 맞춰온 시스템,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책임질 수 있는 구조. 서구권은 결국 이 부분을 봅니다.

저는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과 캐나다의 대형 유통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당시 북미 유통에서 오래된 네트워크를 가진 파트너들, 특히 유대계 파트너들을 포함해 전통적인 북미 유통망을 오래 움직여 온 사람들과도 많이 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단순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신제품이 있어도, 그들은 쉽게 기존 벤더를 바꾸지 않습니다.

기존 벤더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검증됐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조금 높아도, 제품이 조금 덜 새로워 보여도,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클레임이 났을 때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고, 재고와 납기, 마진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오랫동안 반복되며 만들어진 익숙함입니다. 그게 서구권에서 말하는 신뢰입니다.

반면 한국 기업들과 일하다 보면, 출발점부터 다른 경우를 자주 봅니다. "제품이 더 좋으니 직접 거래하면 된다." "중간 유통사를 거치면 마진이 줄어든다." "우리가 직접 바이어를 만나면 더 빠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권 유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바이어가 보는 것은 제품 하나가 아니라, 그 제품 뒤에 있는 공급 구조입니다. 누가 책임지고, 누가 재고를 들고, 누가 현지 규정을 관리하며, 누가 가격 질서와 클레임을 끝까지 책임지는지를 봅니다.

이번 캐나다 잠수함 사업도 비슷하게 읽힙니다. 한국의 제안이 부족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은 기술력, 납기, 생산 능력에서 분명한 강점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캐나다가 본 것은 잠수함 한 척의 성능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수십 년 동안 운용할 수 있는 체계, 나토 동맹과의 훈련 및 정비, 정보 연계, 독일과 노르웨이가 함께 쓰는 플랫폼이라는 안정감, 그리고 캐나다 정부가 나토 동맹 안에서 설명하기 쉬운 선택지였을 겁니다.

서구권에서 "검증됐다"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한 번 납품한 적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이 문제를 겪어봤고, 해결해봤고, 다음에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공급자는 출발선에서부터 더 많은 증명을 요구받습니다. 제품이 좋아도, 가격이 좋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뢰는 스펙표에 적히지 않지만, 최종 의사결정에서는 스펙만큼 크게 작용합니다.

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브랜드가 북미나 유럽의 대형 채널에 들어가고 싶다면, "우리 제품이 좋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좋은 제품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그다음에는 현지 파트너 구조, 규정과 물류 대응, 가격 질서, 재고 운영, 클레임 처리, 그리고 리테일러와의 장기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제품력은 입장권이고, 신뢰 구조는 체류 자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 기업이 서구권 시장에서 아쉬운 순간을 맞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제품력은 충분한데, 관계를 너무 빨리 건너뛰려고 합니다. 기존 유통 구조를 우회하려 하고, 현지 파트너의 역할을 비용으로만 계산하며, 직접 거래를 더 좋은 조건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서구권 바이어 입장에서 직접 거래는 때로 더 큰 리스크입니다. 현지에서 누가 책임지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래가는 브랜드는 다르게 움직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신뢰를 가진 현지 파트너와 함께 들어가고, 그 파트너의 기존 네트워크 안에서 작은 검증을 쌓습니다. 첫 주문보다 두 번째 주문을 만들고, 첫 미팅보다 다음 시즌의 재주문을 준비합니다. 당장은 느려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이번 캐나다의 선택은 한국이 부족해서 졌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무엇을 더 쌓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장면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기술력과 실행력은 이미 충분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신뢰의 구조입니다. 방산에서는 동맹과 운용 체계, 현지 책임 구조이고, 유통에서는 벤더 네트워크와 현지 총판, 가격 질서, 물류와 사후 대응입니다.

서구권 시장은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것을 조심하는 시장입니다. 그 조심스러움은 때로 답답하지만, 한 번 신뢰를 얻으면 오래 갑니다.

그래서 이번 결과가 아쉽지만, 끝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독일 TKMS가 우선 공급사로 선택됐다고 해도, 최종 계약은 아직 협상 단계입니다. 큰 조달 사업에서는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 모든 가능성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습니다. 한국이 당장 선택받지 못했더라도, 캐나다가 한국 방산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다음 문을 조금은 열어둔 장면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 문을 더 크게 열기 위해서는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가 함께 책임질 수 있는지, 어떤 체계 안에서 오래 운영될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구조로 해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방산이든 유통이든, 서구권 시장은 결국 그 구조를 봅니다.

분명히 좋은 제품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기회는 신뢰가 만들고, 오래 남는 것은 구조입니다.

Allen Chung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