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보다 오래 남는 구조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 볼로냐는 확실히 한산했습니다. 현장 분위기만 놓고 보면 “이게 기존 유럽 코스모프로프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쟁과 경기 침체의 여파가 전시장 공기에도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행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뷰티 전시회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규모보다 더 무서운 건, 이 시장이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위기가 와도 결국 살아남을 구조는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현장은 한산해 보였는데 부스는 오히려 더 많아 보였다는 점입니다. 참가사는 늘어난 듯한데 사람의 밀도는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오히려 이 시장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심의 온도는 달라질 수 있어도, 진입하려는 시도까지 쉽게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여전히 이 시장의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한국 부스는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K-Beauty 전문관은 더 커졌고, 전시장 곳곳에 KOREA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더 들어온 건 그 주변에서 움직이던 유통사들의 면면이었습니다. 작년보다 확실히 더 큰 유통사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도 한두 브랜드를 테스트하듯 보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유럽에서 여러 유명 브랜드를 운영해 본 회사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K-Beauty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 장면을 다른 신호로 읽었습니다. 이제 K-Beauty는 신기한 트렌드로 소비되는 단계를 지나, 검증과 운영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시장은 더 이상 분위기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바이어 라운지에 들어가면 그 차이는 더 선명해 집니다. 늘 그렇듯 로컬 바이어가 대다수입니다. 특히 유럽,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바이어들은 결국 자기 시장에서 오래 굴러온 로컬 브랜드와 익숙한 구조 안에서 움직입니다. 저는 이번에 프랑스 파트너사와 함께 움직였는데, 꽤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한국 브랜드 부스를 잠깐 방문할 때를 제외하면, 그들은 대부분 기존 프랑스 및 이탈리아 파트너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시장에서 잠깐 인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가 끝난 뒤 파티에서 다시 만나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다음 날 또 커피를 마시는 방식으로요.

솔직히 말해 저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제가 2010년대 북미에서 늘 해오던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북미에서 거래는 부스 안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부스는 계기일 뿐이고, 관계는 전시회 이후에 만들어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브랜드를 만났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시간을 이어가며 흐름을 만들었느냐 입니다. 거래의 방향은 거기서 바뀝니다.

그래서 저는 늘 같은 말을 해 왔습니다. 전시회는 새로운 제품을 발굴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부분 기존 거래를 확인하고 다음 주문을 연결하는 자리입니다. 이미 거래하던 회사들의 부스를 방문해 신제품을 직접 확인하고, 조건을 조율하고, 물량을 가늠합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몇 주 안에 제품을 받아 실제 유통으로 이어갑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 안부를 묻고, 시장 흐름을 나누고, 다음 분기 계획을 맞추는 일도 모두 그 안에 포함됩니다. 결국 이 전시회는 새 고객을 찾는 행사라기보다 기존 관계를 확인하고 다음 거래를 이어가는 행사로 오래 굴러와 왔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제가 다시 확인한 것도 결국 트렌드가 아니었습니다. 경험 그 자체도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팔리는 구조였습니다. 좋은 제품도, 좋은 사람도, 좋은 기회도 생각보다 쉽게 스쳐 지나갑니다. 대부분은 보고 오고, 좋다고 말하고, 거기서 끝납니다. 하지만 실제 차이는 그 다음에서 벌어집니다. 이 제품을 계속 보여줄 수 있을지, 필요할 때마다 다시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관계를 끊기지 않게 이어갈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박람회는 순간적인 트래픽이지만, 실제 유통은 그 이후 이어지는 지속적인 접점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결국 단발성 이벤트에 의존하는 사람과 구조를 만드는 사람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판매의 차이로 남습니다.

이 프레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현장에 오면 기대치는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이번에 가서 바이어만 많이 만나면 될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바이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특히 유럽의 로컬 유통사들은 한국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미 수십 년간 거래해 온 구조가 있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움직입니다. 한국 제품은 새로운 관심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아직 메인은 아닙니다. 이건 K-Beauty가 약해서가 아니라, 유럽 유통 구조가 원래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특히 북미와 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작년과 다르게 많이 보고 많이 만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입점이 확정된 파트너사와 연결된 브랜드들, 그리고 이번 오프라인 K-Beauty Shelf 프로젝트에 포함된 브랜드들 가운데 PO 전 마지막 조율이 필요한 부스만 방문했습니다. 정확히는 7개 브랜드 중 5개 부스를 파트너와 함께 돌며 최종 커뮤니케이션을 맞췄습니다. 그 외 브랜드들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들어갈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확장을 하려면 우리가 먼저 검증하고, 구조를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합니다. 유럽과 서구권에서의 확장은 어느 날 갑자기 터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준비된 구조가 일정한 속도로 넓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들었던 파트너의 피드백은 꽤 날카로웠습니다. 함께한 파트너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파 및 에스테틱 공급사 중 하나로, 약 2,500개 이상 스토어에 납품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볼로냐 전시회 공식 스폰서 브랜드들의 프랑스 총판 역할도 맡고 있고요. 즉, 단순히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구매와 유통의 현실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화려한 자료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건 “이 브랜드가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굴러갈 수 있는가”입니다. 라벨과 규정, 유통 마진, 가격 질서, 재주문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고 대응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확장은 어렵습니다.

한국 부스들을 보며 이번에도 변함없이 느낀 장면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K-Beauty의 글로벌 진출이 크게 확장되는 듯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힘이 한쪽으로 모이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부스는 많고, 메시지도 비슷하고, 기관이나 대행사별로 경쟁하듯 여기저기 흩어져 배치된 경우도 많습니다. 한곳에 응집되어 한국관으로 존재감을 만드는 대신, 분산된 채 서로 경쟁하는 구조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더 아쉬운 장면입니다. 방법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런 당연함까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또 하나 반복해서 보인 장면도 있습니다. “우리 제품 좋아요”, “단가 싸요”는 말하지만, 정작 바이어가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빈약합니다. 그래서 바이어 정보를 제대로 쌓지 못하고, 누가 진짜 바이어인지도 끝내 가려내지 못합니다. 전시회가 끝나면 남는 건 명함 몇 장과 “열심히 했다”는 감정뿐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아무리 지원사업으로 보완해도 몇백, 많게는 몇천만 원을 쓰고도 그 돈이 의미 있는 트래픽과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돌아가서는 아마존과 마켓플레이스에서 또 광고비를 태우며 새 고객을 찾는 무한 루프로 들어갑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구조입니다.

큰 브랜드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전담 세일즈 팀이 있어도 판매 경쟁에만 몰두하면 구조는 무너집니다. “많이 가져가서 팔아줘”가 전제가 되는 순간 가격은 흔들리고, 브랜드는 닳기 시작합니다. 특히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다루는 대형 유통사일수록 한 브랜드가 무너지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됩니다. 결국 오래 가는 사람은 판매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질서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파트너들과 함께 움직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크게 확장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이 질문에 대해 파트너와 저의 답은 늘 비슷합니다. 최소 2년, 더 빨라질 수는 있지만 제대로 하려면 그 정도는 걸립니다. 북미에서 제가 확장해 온 속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격이 급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답답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2년을 견디면 20년을 살 수 있는데, 당장의 기대치 때문에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바이어가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지, 왜 지금이 타이밍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거래는 생기지 않습니다. 신뢰가 없다면 확장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한 번의 미팅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준비된 구조 위에서, 이미 신뢰를 쌓아온 파트너와 연결될 때 비로소 확장이 시작됩니다. 충분한 자금력과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성공 공식을 따라가기보다 자기 방식으로 증거를 쌓아야 합니다.

올해 볼로냐가 한산해 보였던 이유는 어쩌면 단순합니다. 시장이 더 냉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관심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결국 남는 건 구조입니다. 그리고 구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준비한 사람이 가져갑니다.

Allen Chung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