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전략이다

유통과 수출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아마 “얼마에 팔 것인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격은 원가와 비용을 반영하는 동시에 포지셔닝과 바이어와의 신뢰, 앞으로 이어질 협상과 마진 구조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지에서는 그 질문과 매번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렴하게 많이 팔면서 점유율을 키울 것인지, 아니면 제값을 받고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저는 매번 후자를 택해 왔습니다. 빠른 성장은 막혔지만, 브랜드 가치와 가격 질서를 지키는 길이었고 지금 돌아봐도 언제나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기업 컨설팅에서도 가격 논의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많은 기업이 합리적인 가격 설정에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싸게 팔면 많이 팔 수 있고, 비싸면 경쟁력을 잃는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좋은 제품을 왜 굳이 싸게 팔아야 하는지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개발하며, 마케팅 비용과 재고 리스크까지 감안한다면 싸게 파는 선택은 지금 당장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손실을 떠안기 쉽습니다. 여유가 있는 대기업이 아니라면 더욱 위험한 선택입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한국 Beauty 제품이 무척 주목받고 있습니다. 언론은 수출 성과를 앞다투어 전하지만, 그 시장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여전히 가격 위주의 경쟁이 많습니다. 아마존 등에서 한국 제품이 1–2위를 다퉈도 낮은 평균 판매가와 광고비, FBA 및 창고비 등을 합치면 결국 플랫폼이 이익이 커지는 구조가 됩니다. 오프라인 채널은 마진을 확보하기 어렵고, 저가 판매는 수익 모델로 전환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현장의 요구는 자연히 “더 저렴하게”로 통일이 됩니다. 명동 거리의 “1만 원, 20매” 마스크팩, 국내 전시회 마지막 날의 70–90% 세일을 보면 그들의 요구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싸게 팔면 “가성비” 이미지는 얻을 수 있어도 브랜드의 “가치”는 서서히 희석됩니다. 그렇게 길들여진 시장에서 과연 누가 제값을 내고 수입하며 누가 건강한 마진으로 유통을 운영할 수 있을까요?

가격을 올리면 판매 수량이 반드시 줄어든다고 생각하는데 현장에선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비싼 가격은 품질과 신뢰의 신호가 되고, 선택의 확신을 키우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값이 지켜질 때 현지 유통 파트너의 마진이 건강해지고, 재고 및 판매팀 교육, 마케팅에 장기 투자할 여유가 생깁니다. 브랜드사 역시 숨을 고를 공간을 확보하고 그 여유가 신제품 개발과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수익이 확보되어야 미래에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고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편익이 커지게 됩니다. 저성장기에 살아남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라 생각을 합니다.

현장에서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일부 정부 지원 구조가 바이어의 구매 비용을 보전해 기업의 수출 실적으로 잡히기도 하는데, 검증되지 않은 거래가 현금화를 위해 덤핑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단기 수치는 잠깐 오를지 몰라도 해외 가격 질서의 붕괴와 브랜드 신뢰 저하라는 진짜 비용이 뒤따르게 됩니다. 물론 건강한 지원 사업과 훌륭한 바이어도 많겠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설계와 운영이 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물론 실적도 중요하지만, 실제 판매와 재주문으로 증명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북미와 유럽에서 ‘적게 팔아도 제대로 판매하는’ 경로를 택해 왔습니다. 겔 마스크 한 장을 동유럽의 Rossmann에서 5.75유로(한화 약 9,500원), 프랑스 파리의 몽쥬약국에서는 6.99유로(한화 약 11,500원)에 판매합니다. 해당 카테고리 평균의 두 배 이상이지만 판매는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최근에는 2-3차 추가 발주(PO)도 확정됐습니다. 현지 규정을 준수한 패키징과 함께 현지화 된 마케팅 지원, 인플루언서 연계 같은 조건이 가격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킨 매출은 다음 시즌과 더 많은 SKU를 논의할 때 협상 자산이 됩니다.

가격은 시장과 대화하는 첫 문장입니다. 첫 문장을 가볍게 쓰면 다음 문단은 아무도 진지하게 읽지 않습니다. 반대로 첫 문장이 단단하면 현지 유통 파트너는 안심하고 투자하고, 소비자는 일관된 경험을 믿고 재구매합니다. 이러한 선순환이 쌓이면 “싸게 많이”와는 다른 성장 곡선이 그려집니다. 덜 팔아도 더 남고, 늦게 가도 더 멀리 가는 방식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초기에 속도가 조금 늦더라도, 제값을 인정하는 유통 파트너와 시작점을 만듭니다. 단기 수치보다 현지화 및 스토리텔링에 투자하고, 채널 역할을 분리하며, 온라인에서 가격 구도를 먼저 잡아 브랜드를 정상 가격으로 관리하면서 가격 질서가 무너지는 위험을 줄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력이 있다면 보여주기식 실적보다 현지화와 리뷰를 통한 경험 확보에 자원을 투입합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가성비를 잘 만들어 왔지만, 이제는 왜 이 가격이 합당한가를 일관되게 증명하고 그 질서를 지켜주는 파트너를 선택해야 합니다. 결국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전략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싸게 많이”에서 “가치 있게 제대로”로 선회할 때, 한국 제품의 가치도 함께 올라갈 것입니다.

“가격은 우리가 내는 돈이며, 가치는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이다.”

현장에서 배운 것은 단순합니다. “빨리·많이”보다 “제대로·오래”가 남습니다. 가격은 오늘의 매출만이 아니라 내일의 선택권을 결정하기에 더 늦더라도 더 멀리 가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제값을 지키는 파트너와 질서를 세우고 재주문으로 증명하며 미래의 시간을 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가격으로 끌려가는 제품이 아니라, 따라오게 만드는 제품이 될 것입니다.

Allen ChungComment